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기욤 드 티레 (문단 편집) == 유산 == 기욤 드 티레는 [[공의회|제 3차 라테란 공의회]]에 대한 기사와 [[무함마드]] 시대의 [[이슬람]] 국가에 대한 '''동양의 역사(Historia Orientalis)'''를 집필했지만 현재까지는 둘다 유실되어 제목만 존재하는 실정이다.[* 선지자 [[무함마드]]에 대한 불경한 --실화--묘사(늘그막에 9살의 아이샤와 결혼 그리고 유아와의 성관계...)가 있다고해서 무슬림들이 현상금 걸고 다 찾아내 --찢어발겼다--훼손했다는 설이 있다.] 대신에 그는 오늘날 [[예루살렘 왕국]]의 역사 저자로 유명한데, 바로 자신의 필생의 역작인 '''예루살렘의 역사(Historia Ierosolimitana)'''와 '''바다 너머에서 행해진 일의 역사(Historia rerum in partibus transmarinis gestarum)'''가 현전하기 때문이다. 그의 죽음 직후에 [[프랑스어]]로 번역되었고, 그 후 수많은 다른 언어로 번역되어 중세 역사가부터 현재까지 수많은 책에 인용됐다. 그것도 그럴것이 [[12세기]] [[예루살렘]]의 원주민이 기록한 유일한 출처이기 때문에 역사가들은 [[십자군]] 연구의 정석이자 개론으로 활용되어 기욤 드 티레의 진술이 액면 그대로 취해졌다. 최근의 역사 학자들은 기욤 드 티레가 왕국의 정치적 분쟁에 개입 한 것이 그의 기록에 편향된 결과를 초래했다고 --[[뇌피셜]]--비판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, 그 당시 연대기 역사서의 유일본이라 교차검증이 불가능해, 기욤 드 티레는 십자군 전쟁의 가장 큰 연대기 역사가로 간주되고 있고 현대의 많은 십자군 관련책들은 그것을 원전으로 나오고 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